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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01월 05일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메인 블로그는 '다음'에 있습니다. 방문해 주시면 기쁘게 생각하겠습니다.

바로가기 : http://blog.daum.net/tjryu/

# by 미리내 | 2008/01/05 19:41 | 트랙백 | 덧글(1)

2005년 11월 05일

맥아더 때문에 다시하는 공부//한국전쟁

모든 전쟁은 자본가, 특히 거대자본의 소유자들의 문제해결을 위한 것이었으며 자본가들은 그들의 영향력을 유지확대하기 위해서 정치권력을 조종하는 단계까지 나아가며 따라서 정치가들이란 자본가의 교묘한 조종에 따라 움직이는 배우(player)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이건희는 대한민국 정치권력을 자기뜻대로 좌지우지하려 했음이 드러나지 않았는가 말이다. 세계차원에서는 네덜란드 빌더버그 회의라는 게 매년 세계 주요 의제를 결정한다는 얘기가 있은 지 오래다. 그리고 우리나라 언론이 삼성에 대해 쉬쉬하듯이 미국언론은 빌더버그에 대해 함부로 다루지 않는다고 한다. 어쨌든 역사적으로 볼 때 2차대전은 미국의 공황문제를 해소했고 한국전은 일본의 경제문제를 해결해 주었고 베트남전은 비록 우리가 소극적 수혜자였지만 우리나라의 경제문제를 해결해 준 바 있다.

지금 한반도에서 평화체제를 정착하려면 이러한 대자본가의 속을 꿰뚫어보고 그들에게 한반도에서 전쟁 없이도 그들의 이익이 관철될 수 있음을 인식시켜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쨋든 그들은 지금 이라크 전쟁을 통해서 그들의 문제를 해소하고 있음이 틀림없는데 무엇보다도 한국전쟁때처럼 제국주의자 또는 패권국가들이 우리 문제에 대해 폭력적으로 개입할 명분을 주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민족문제를 '우리끼리' 잘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말과 행동으로 보여준 6.15의 의미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본다.

박명림 교수는 말한다. "물론 6·15가 완전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분단 이후 최초로 남북한이 공동으로 기억할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었다는 것은 앞으로도 공동의 미래를 기획할 수 있는 데까지 나아갈 수 있는 소중한 기반이라는 점에 대해 주목해야 한다. 특히 이를 통해 미국과 중국 등 주변 강대국들에게 '우리가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아울러 남북한 모두에게 6·15에 담긴 평화 공존 정신을 깨뜨리려고 하는 시도들을 억제할 수 있다는 것 역시 중요한 의의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남한 민주화의 반영이자 성과이기도 하다."

맥아더 동상 철거여부를 둘러싼 대립을 보면서 우리 사회의 담론이 한단계 올라와 있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아직도 절대존속/절대철거를 외치며 단세포적 반응을 보이는 사람도 있지만 이런 일을 계기로 우리의 과거를 다시 보고 우리의 역사와 지리를 둘러싼 거대 자본의 속셈을 잘 관찰하는 일이 무척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느끼게 된다. 남북화해도 통일도 결국 이 땅에 사는 이들이 평화롭게 함께 번영하자는 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유럽연합방식의 평화체제는 두번의 대량학살을 통해 이룩된 것이지만 우리는 한번으로 끝내야 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 by 미리내 | 2005/11/05 09:22 | 에세이와 팡세 | 트랙백 | 덧글(2)

2005년 11월 04일

오로라 공주//신자유주의에 대한 조롱

아들녀석 휴가 보내기에 찬조출연이라고 할까. 저녁에 일찍 퇴근하여 동네 백화점에서 저녁을 함께 하고 오로라 공주를 봤다. 영화 보기전 남는 시간에 오락실에서 아들녀석이 하는 게임을 보니 총으로 옥상에 있는 사람을 쏘아 맞추는 게임이다.

섬뜩하고도 잔인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런 것들을 태연하게 만들어내어 돈을 벌고 있는 이 사회 전체가 이미 폭력에 깊이 물들어 있는 게 아닐까? 우리가 자랄 때는 그렇지 않았기에 더욱 낯설게 느껴졌다.

영화가 시작되니 첫장면부터 잔인하기 그지 없는 복수 살인극이 벌어진다. 다섯번의 연쇄 살인이 너무 쉽고도 냉혹하게 진행되는 건 이 영화의 목표가 리얼리즘이 아니라 이 사회에 대한 고발이자 조롱이기 때문인 것 같았다.

왜냐하면 연쇄살인의 과정에서 내 생각으로는 자본과 공권력과 종교가 마음껏 조롱받고 있었다. 긴장감 없이 뒤만 쫓는 경찰은 공권력의 표상이고 대부분의 피살자들의 삶은 노블리주 오블리스와 담쌓고 지내는 이 나라 자본가들 또는 상층계급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였다.

피살자 중 한사람은 아동학대를 사유로, 두 사람은 남녀차별주의자이기 때문에 살해되었는데 아동학대나 남녀차별도 궁극적으로는 비인간적인 짓으로 강자 또는 자본의 이익에 봉사한다. 아동구호단체들이 아이들을 돈벌이 수단으로 사용하는 사례들은 신문을 뒤지면 쉽게 찾을 수 있다. 남녀차별은 임금차별을 통해 기업의 이익에 봉사한다.

형사가 도피처로 찾고 있는 종교 역시 사회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자동차 안에 매어달린 십자가처럼 한갖 기복수단으로 전락하여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처럼 내겐 읽혔다. 아이의 죽음과 살인자의 변호 그리고 살인자와 변호사가 누리는 자본가다운 호사스러움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사법권력의 타락과 겉만 매끄러운 자본의 모습이었다.

살인동기를 설명하는 후반부에서는 한 어린이를(나는 오로라 공주가 우리 사회의 가장 무력한 하층계급을 상징한다고 본다), 자본만이 발언권을 가지는 신자유주의에 푹 쩔은 이 사회가 어떻게 살해하고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이 영화는, 휴머니즘을 골간으로 하는 르네쌍스 정신 가운데 평등과 형제애를 탈색시키고 자유만을 극대화시킴으로써 효율과 이윤 지상주의의 노예가 되어버린 살벌하고 험악한 사회에 대한 처절한 고발이 아닌가 한다.

이렇게 병든 사회를 치료하는 단초는 헌법이 허용하는 한 최대한의 사회주의적 요소를 조속히 강화함으로써 가능하리라는 게 내 생각이다. 요컨대 사람들의 일상생활에서 더불어 사는 가치가 우선시되고 약자에 대한 배려가 자연스레 실천될 수 있는 사회로의 변혁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제작진이 의식했는지 안했는지 확인할 길이 없지만, 또 시를 읽을 때처럼 제작자와 아주 달리 영화를 해석해주는 것도 가치있는 일이기에 나는 이 영화가 신자유주의 대한 신랄한 조롱이라고 읽고 싶다.

※제 다음블로그(http://blog.daum.net/tjryu)에서 퍼왔습니다.

# by 미리내 | 2005/11/04 09:59 | 에세이와 팡세 | 트랙백(3)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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